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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문희네 집

매주 월요일밤 연재됩니다. 글 허진

이혼한 후에는 혼자 살겠다는 결심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제 내년에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은 엄마가 빨리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도대체 우리 아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말려야 정상인 나이이다. 아직 사춘기는 아니라서 그럴까 ? 어리거나 크거나 부모의 재혼을 반기는 자식이 있을까? 어쨌든 문희는 아들이 그렇게 재혼을 찬성하는 것이 그닥 싫지많은 않았다.  어차피 재혼할 생각은 없지만 반대하는 것보다는 낫지...지가 뭔데 엄마일에 반대해봐야...

문희: 너 만일 새아버지가  너 안이뻐하고 용돈도 안주면 어떡할려고 그래 ...

철호:  엄마 생각해서 결혼하라는 거지 뭐 나땜에 결혼하라고 하는건가? 

문희: 참...기특하다..넌..근데 만약 새 아버지가 니 아버지처럼 엄마하고 매일싸우고  맨날 술이나 먹고  도박이나 하고 다니면 어떡할려고 그래? 

철호:  그러니까 잘골라야지..

문희는 할말을 잃었다. 철호는 아직 모른다.만일 새 아버지를 만나서 또 이혼이라도 한다면...이혼이라는 것이 말처럼 도장만 콩콩..찍으면 끝나는 게 이혼이 아니지 않은가..지난 몇 년을 생각해보면 지옥에서 돌아온 느낌이다. 이혼하기까지의 갈등...고민..숱하게 들이킨 소주잔...재산을 둘러싼 신경전..법적인 투쟁..

이혼으로 위자료는커녕 재산의 절반이 날아갔다.  이혼하면서 한목 두둑히 챙기는 것이 여자 아니던가..어떻게 거꾸로 되었으니 생각하면 화만 치밀고 그바람에 10년은 더 늙은 것만 같다.

문희 : 됐어 엄만..남편 없이도 잘살수 있으니까..니걱정이나해..너 혹시 아버지 없다는 소리 들을까봐 걱정되서 그러니? 

철호:  아니라고..

문희: 그럼 왜 그러는데?

철호: 우리반 학생들 중에서 부모가 이혼하고 재혼한 사람이 몇 명인지 알아? 10명이 넘어.

문희 :  삼분의 일이네...너네반은 왜그러니?

철호:  다른반도 다 그래

문희: 설마...

철호:  진짜야..거짓말하나..

옛날하고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래도 35명 중에 10명은 좀 심했다 싶다. 철호의 응원 때문인지..혼자 살겠다는 생각은..왠지 모르게 꺼져가는 모닥불 불씨처럼 사그라져 가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놀이터를 내려다 보고 있노라면 퇴근해서 들어오는 아저씨들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저 아저씨는  어떤 부인하고 살고 있는거지..그 부인과는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부부싸움은 자주 할까? 어디 아픈데는 없을까...자식은 몇 명이 있을까? 아들일까 딸일까?  몇살이나 되었을까? 공부는 잘할까? 

하루 하루 그렇게 베란다를 내려다 보는 일이 잦게 되자 어느정도 얼굴이 익숙한 사람도 있는 반면에 얼굴이 익을만한면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사를 가 버렸나? 모닥불의 불씨가 점점 꺼져가자 조급한 생각도 든다. 내나이 마흔 둘... 아직 20대와 별차이없는 외모이지만 마흔이라는 나이는 충분히 여자들에게는 조급한 나이이다. 

하루 하루 먹어가는 나이는 하루하루 새로운 남자를 만날 기회가 멀어져간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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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는 이사오는 사람도 많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이사짐 나르는 일로 분주하다. 아침 열시에 벨이 울렸다. 미순이네 엄마가 틀림없다. 어저께도 왔는데 오늘또? 첨에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오더니 점점 느는 것 같다.

그러다가 눌러 앉는 것은 아닌지...자주오는 것 까지는 그냥 말리지 않겠다. 은근히 듣기 소리 하는 편이다.

미순엄마: 아니 피아노 선생해서 얼마나 벌겠어..철호도 이제 고등학생되고..학원도 보내야하고....그거 좀 생각해봤어?

문희: 인형 눈알 붙이는거 ?

미순엄마: 놀면 뭐해 남는시간에 그거라도 하면 보탬이 되잖아. 얼마 안되는 것 같아도 푼돈이 무시 못하는 거라니까 내가 갖다줄게..한번 해봐

문희: 됐다고..

미순엄마: 인형눈 붙이는거 말고 목걸이 꿰는거있어..하나 꿰는데 백원준데..

한두 번 이야기 했으면 그냥 들어줄텐데 벌써 열번째가 넘는다. 한동네 살면서 얼굴 붉히고 살 수도 없고...지겹지만 참고 듣는수밖에.. 남편복 없는 년은 이웃집 복도 없나보다.

그런데 인터폰에 보이는 사람은 왠 젊은 남자였다.

문희: 누구세요?

남자: 아 아랫집에 이사왔는데요. 떡좀 드릴려구요.

문희는 문을 열었다. 함부로 문열어주면 안되는데..떡돌린다고 하고서 강도로 돌변할 수도 있지 않은가..그런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남자는 20대 중반이나 후반 정도로 보였다. 그리고 무척 잘생긴 얼굴로 영화배우를 해도 될 것 같다. 그래서 그만 문을 열어 버린 것이 분명한 자신이 너무 바보같기도 하고 속물같은 느낌이 든다.

남자: 잘 부탁드립니다.

문희: 아네...잘 먹을께요..

남자는 문을 닫고 사라졌다. 다행히 강도는 아니었지만 담부터 절대 얼굴 잘생겼다고 목숨을 담보로 하지 말아야겠다. 잠깐 차라도 하고 가라고 그럴걸 그랬나.... 아니..그냥 보내길 잘했지. 나이먹었다고 너무 헤벌쭉 한 모습 보이길 싫다. 사십넘었지만 마음만은 나도 청춘이다. 그런데 아랫 집이면 미순이 엄마네 집 아닌가.

그때 또 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미순엄마다.문을 열자 미순엄마는 떡 접시를 내밀었다.

미순엄마:  봤어? 봤어?

미순엄마는 테이블 위에 있는 떡 접시를 발견하고 똑같이 생긴 자신의 떡접시를 내려놓았다.

미순엄마:  우헤헤헤..우리 옆집에 이사왔는데 어머..총각이래..호호호호호. 어쩜 그리 잘생겼냐..눈썹이 그냥 그린 것 처럼..샤야아악 생긴게..왜 그런데 그나이까지 장가를 못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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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  총각이래?

미순엄마:  그렇다니까..

문희:   어떻게 알았어?

미순엄마; 아유..떡 가져왔길래 내가 차한잔 하고 가라고 붙들었지. 35살이래

문희: 그래?...난 이십대로 봤어...이제..한 스물다섯 살 됐나 했는데..근데 진짜 왜 장가를 못갔을까?

미순엄마: 그게 다...그런게 있다니까..

문희:  뭔데

미순엄마: 아유 커피좀 내와봐.

문희는 커피를 타는동안 공곰해 생각해보았다. 그런게 과연 무엇일까.. 무엇이든지 털지 않고는 못배기는 미순엄마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올지 궁굼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문희: 집에 김치 떨어졌어 김치좀 가져와

미순엄마:  저기말이야.. 저렇게 잘생긴 사람은 뭔가 흠이 있다는거야. 그러니까 신은 공평하다고 하지..

문희: 무슨 흠있는거 봤어? 보지도 않고서 그런말을 해..

미순엄마: 뻔하지..35살 넘도록 혼자살면..어디..이상이 있는거지..남자구실을 못한다거나..아니면 돈이 한푼도 없다거나..어디 도박을 하러 다닌다던가..어디 아픈데가 있다거나..

문희:  뭘 그렇게 관심이 많어 이웃집 남자한테..남편이나 신경쓸일이지..

미순엄마: 누가 내가 관심있대? 철호엄마생각해서 그러는거지 철호엄마 재혼해야 할거아냐? 나야 남편있는데 뭘 어쩌겠어. 아무리 아랑들롱이면 뭐하냐고.

문희: 내생각 하셨다...? 내가 지금 마흔 둘인데 서른 다섯살 짜리 남자가 어울린다고 생각해?

미순엄마: 요즘 연상 연하가 뭐가 중요해? 8살 차이면 딱좋네..

문희: 일곱 살 차이지 ..

산수도 못하는 여자하고 계속 대화를 해야 하는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어쩌다 틀리면 내가 말을 안한다.

문희가 이집으로 이사온지는 삼개월 남짓하고 미순엄마가 문희네 집을 들락거리기 시작한지는 겨우 한달 정도에 불과하다. 계속 가까이 할지는 두고봐야 하는 문제인데 동네에 아는 친구도 많지 않으니 가까이 해주는 것이 고맙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그동안 뻔질나게 들락거리면서 커피며 빵이며 닥치는대로 식탁위에 있는 것을 주워먹으면서 가져온 것이라고는 하루지나서 딱딱해진 부침개..다 쉬어터진 김치 한접시.. 유통기한을 알수 없는 콩자반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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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 꽃집이 여기 있었구나..

철호:  또 사?

문희:  몇 개나 된다고 그러니?

철호:  맨날 사면 뭐해 맨날 죽는데..

문희:  물을 잘 안줘서 죽었는지..너무 많이 줬는지...

철호:  삼천원이면 짜장면이 한그릇인데..

이사온지 3개월이 지났는데 꽃집이 여기도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런지도 모르고 멀리까지 갔었는데...허브하나 선인장 두 개 그리고 아이비 세 개를 비닐 봉투에 담았다.

그래도 코딱지 만한 17평 짜리 아파트라 화초 채우기가 덜 부담스럽다. 43평 아파트 살때는 두배가 더 들었었다. 아파트가 작을까봐 이사오면서 몇 개 빼고 대부분 처분해 버렸는데 모두 가지고 올걸 그랬다.

일요일이면 좀 쉬고 싶은데 집안 정리도 해야 하고 화초도 가꾸고 하다보면 쉴틈이 없이 지나간다. 어쩌면 나는 일 중독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남편 때문에 힘들었던 시기는 지나갔으니 일하는 것이 즐겁다.

문희:  공기 정화도 되고...많이 있으면 좋잖아 뭘그래?

철호:  엄마 짜장면 먹고가자.

문희:  무슨 짜장면이야 그거 몸에 안좋아 기름기 많고..집에가서 밥먹자.

철호:  간짜장 먹으면 되지.

문희:  간짜장이 짜장면 보다 기름기가 더 많은거야..

철호:  그럼 짬뽕 먹으면 되잖아.

문희:  짬뽕이건 복음밥이건 중국음식은 기름기없는 것 하나도 없어. 다 기름넣고 볶은 거라고..너 자꾸 배나온다면서 그런거 먹으면 어떡해? 그런거 먹으면 오래 못살어.

철호:  내가 몇살인데 벌써 죽을 걱정부터 해?

철호와 문희는 중국집에 들렸다. 어쨌든 일주일에 한번은 외식도 하는 것이 맞다. 좀 비싸지만 해파리 냉채 같은 것 시켜 먹어야겠다.

철호:  나 해파리 냉채 싫어 그냥 짜장면 먹을거야..

문희:  먹어봐 맛있어..

그때였다. 문이열리고 한남자가 들어왔다. 어디서 봤더라..맞다...아랫집에 이사온 그 총각..떡접시를 갖다 줬었지..아는 척을 해야 하나..

태훈:  짬짜면 하나 주세요.

태훈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문희와 눈이 맞추쳤다. 눈인사라도 해야 하나 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기억이 안나는 듯 태훈은 곧 고개를 돌렸다.

잠시후 짬짜면이 나오고 태훈의 식탁위에 올려졌다. 문희는 그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참 아깝다. 혼자 살기에는..정말 혼자 사는 것일까?

**************

태훈은 전자밥통을 열어보았다. 밥은 남았는데 반찬이 마땅치가 않다. 김치도 없고...아까 짬자면 먹었는데 또 중국집을 가야 하나..아까 중국집에서  윗집사는 아줌마를 본 것 같은데..인사를 할걸 그랬는지.. 가까이 살면서 좀 친해질수 있는 기회였는데..놓쳐 버린 것 같아 아깝다.

다음에는 눈인사라도 해주어야지..

시장에가서 밑반찬이라도 좀 사올까...밑반찬도 어찌나 비싼지 코딱지만큼 담아놓은 무말랭이가 삼천원씩이나 한다. 그까지꺼 그냐 대충 무하나 사다 썰어서 고추장에 버무리면 되는거 아닌가..한 삼만원어치는 나오겠다.

비록 무말랭이는 아니고 무무침이기는 하지만....먹어줄정도는 되겠지..그래도 무사다가 썰어서 고추장에 무치는 것 간단해 보여도 꽤 시간 간다. 씻어야지 썰어야지 무쳐야지..담아야지..

그때 벨이 울렸다. 누군가 보니 옆집 아줌마같다.

미순엄마:  아요...혼자 계셨어? 여기 전에 떡 잘먹었구..요것좀 잡숴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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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라는 말도 안했는데 미순엄마는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가져온 콩자반 한접시를 식탁위에 내려놓았다.

미순엄마:  어머..아직 짐정리도 안했네.. 내가 좀 도와줄까..

태훈:  아니예요.

미순엄마:  아니 이웃좋다는게 뭐야 이런때 좀 돕고 살아야지 가만있어봐 점심은 먹었어?

태훈:  네..이제 먹으려던 참인데..

미순엄마:  어머..냉장고가 텅텅 비었는데 뭐하고 먹으려고..밥은 있는데 김치라도 좀있어야지

미순엄마:  가만있어봐 내가 금방 김치 가져다 줄게.

태훈:  아네... 괜찮은데..헤헤.

***

띵동띵동 !  문희 사다놓은 선인장을 화단에 옮겨심고 있었다. 벨이 울리자 대충 손을 털고나서 문을 열었다.

미순엄마:  아고 철호엄마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김치좀 꺼내봐봐.

문희:  아니 김치떨어졌다고 가져오랬더니 왠 김치를 나한테서 찾어.

미순엄마는 냉장고문을 열었다.

미순엄마:  여기 깍두기 하고 파김치 있네 이거면 되겠다. 이거하고..이거 고등어 조림 이거이거..이거좀 가져갈게.

문희: 아니..그걸 왜..

미순엄마:  지금 밑에집 총각이 밥먹을 참인데  반찬이 하나도 없는거야. 그래서 갖다주려고 그러지.

문희:  뭐? 아니 미순엄마네 반찬갖다주지 왜 내반찬을 갖다줘.

미순엄마: 이런..답답하긴..이게 다 누구좋으라고 하는건데 다 철호엄마 생각해서 하는거라고. 내가 지금 남편있는데 괜히 옆집 총각한테 공들이겠어? 철호엄마 잘되보라고 그러는거지. 이런 기회가 어디 쉽게 오는지 알아?

문희: 나 참 어이가 없어서 . 아유 됐어.

미순엄마: 돼긴 뭐가돼 빨리 따라와 어서..

문희: 뭘 따라와 !

미순엄마:  짐정리하는데 좀 도와줘야 할거 아냐 빨리 와 빨리

문희: 아 싫다고 ...

미순엄마;  저런..아유 속터져 속터져..

 

미순엄마는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싹슬이해서 문을 닫고 사라졌다. 문희는 한 대 얻어맞은 듯 뒷통수를 잡고 멍하니 서있었다.

이를 어쩐다.  괜히 사람 불편한 관계 만들어서 뭐 어쩌자는 거지..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저 미순엄마 가만 놔뒀다가는 큰 코다치겠다. 이나이 먹을 때까지 한두 번 당해본 것이 아니지 않은가.. 철호가 크고 있다.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지. 한 아이의 장래를 책임지는 어머니로서 이렇게 휘둘리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잠시 거울을 살핀후 겉옷을 챙기고 미순엄마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초인종을 눌렀다. 미순엄마네 옆집이라면 이집이 분명 맞을 듯 싶다.

띵동 띵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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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고 미순엄마가 나왔다.

미순엄마:  빨리 들어와.

미순엄마와 태훈은 마침 미순엄마가 가져온 반찬을 놓고 밥을 퍼놓고 먹으려는 참인 듯 하였다.

태훈:  와..많이 가져오셨네..삼일은 먹겠는데요.헤헤.

미순엄마: 밥먹었어? 같이 먹어 이리와.

문희:  저 저번에 떡 갖다 주신 것은 감사히 먹었는데요. 이 반찬은 미순엄마가 우리집 냉장고에서 허락도 없이 꺼내간 음식이예요. 도로 가져갈게요. 철호오면 밥차려 줘야 되요.

문희는 쟁반에 반찬들을 모두 담았고 태훈은 당황한 듯이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태훈: 아네...

미순엄마: 아니...철호엄마 너무하네....새로 이사온 총각이 밥좀 먹겠다는데 그까짓거 반찬하나 못내줘?  지난번에 떡도 얻어먹었잖아.

태훈:  아뇨..괜찮아요. 그냥 가져가세요. 전 사다먹으면 되니까..됐어요.

문희는 말없이 문을 닫고 태훈의 집을 나왔다. 속이 후련하다. 뒷수습은 이렇게 하는거다. 태훈에게는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 보다는 낫다.

안그랬으면 태훈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나이값 못하고 젊은 총각한테 언감생심 꼬리치는 주책 맞은 아줌마로 볼 것이 아닌가. 그나저나 앞으로 미순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는다. 서로 안면 까고 살 수도 없는 문제고...그렇다고 가까이 하기도 싫다.

 

철호는 중국집에서 짬짜면을 먹고 있었고 그 앞에는 탕수육 한접시가 놓여있었다. 짬짜면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민수: 많이 먹어라.

철호: 아저씨는 왜 안드세요?

민수: 응 먹어 먹을거야.

철호:  근데 아저씨는 언제 이사오세요?

민수:  좀 있으면 올거야.

철호:  우리집 옆집으로 왔으면 좋겠다.

민수:  나도 그럴려고 기다리는 중이야. 지난번에 위층에 자리가 하나 났기는 했는데 위층이라 할까말까 망설였었지. 아무래도 옆집이 낫겠지.

철호:  근데 우리집 아랫집에도 새로 이사온 아저씨가 있는데요 되게 잘생겼어요. 조인성 같이 생겼어요.

민수:  그래? 너희엄마 조인성 좋아하니?

철호:  네. 조인성 나오는 드라마는 다 봐요.

민수:  큰일났네..

철호:  너무 걱정마세요. 7살이나 아래인데 무슨 일이 있겠어요? 그리고 내가 반대하면 절대로 결혼 못하니까..절 믿으세요.

민수:  철호야 너만 믿을게..

민수가 문희를 알게된건 문희가 다니는 헬스클럽을  통해서 였다. 첫눈에 민수는 문희가 맘에 들었다.  그러나 문희는 민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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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얼쩡거려봐야 좋아보일 것 하나도 없다. 차라리 나쁜 남자 컨셉이 낫지

문희가 없는 틈을 타 민수는 철호를 불렀다.

민수:  야 임마 이리와봐.

철호:  왜 그러세요?

민수:  너 이자식 몇학년이야?

철호:  중학교 3학년인데요.

민수:  어느학교 다녀!

철호:  국토 중학교요.

민수:   너 요앞에서 아까 담배폈지?

철호:  안폈는데요.

민수:  손이리 내봐

민수는 철호의 손을 잡고 냄새를 맡았다. 킁킁...


민수:  담배냄새 나는데 ?

철호:  안핀다니까요?

민수:  그래?

         아까 피는거 다 봤어  이리 따라나와봐.

철호:  왜그러세요. 안피웠어요.

민수:  증거를 보여주면 될거아냐.

철호:  증거요?

민수:  그래 증거가 있어.

철호:  어떤건데요.

민수:  그러니까 와서 보라니까.

철호는  말없이 민수를 따라나왔다. 아씨..뭐야.. 엄마한테 전화할까? 그냥 토낄까..일단 증거가 뭔지 보고 이야기 하자. 혹시 이상한데 끌고 가는건 아닐까?

민수는 철호를 데리고 헬스클럽을 나왔다. 어느 골목을 들어가더니 담배꽁초를 하나 주웠다.

민수:  이거 니가 핀거지?

철호:  아니 그게 제가 핀거라는 증거라는거예요? 어떻게 그게 증거예요?

민수:  지문감식하면 다 나와.

민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담배꽁초를 감싸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민수: 일주일만 기다려 이거 일주일 뒤에 지문감식 한 다음에 너 범인이면 그때 너는 죽었어.

철호: 만일 아니면 어떡할건데요?

민수:  짜장면 사줄게.

자고로 똥개를 꼬실때는 쥐포가 최고요 중학생을 꼬실때는 짜장면이 최고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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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호:  진짜 어이없네요.

민수:  뭐가?

철호:  고작 짜장면 하나로 때우신다고요?

민수:  그럼뭐.

철호:  짜장면하고 탕수육 사주세요.

민수:  야 임마 요즘 탕수육이 얼마나 비싼데. 알았어. 이리 따라와.

철호:  어디 가게요.

민수:  탕수육 먹고 싶다며.

철호:  지문 감식 한다음에 사주는거 아니예요?

민수:  너 아닌거 확실하다며. 그러니까 미리사주는거야.

만일 아니면 니가 짜장면 값 물어내면 되지.

철호: 아예..

 

좀 말이 안되는 것 같기는 했지만 철호는 자기가 피운게 아닌게 확실하기 때문에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철호와 민수는 중국집에 들어왔다.

민수: 여기 짜장면 하고 탕수육 주시고 빼갈 하나에 짬뽕 하나 주세요. 빼갈부터 먼저 주세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낮선사람과 이렇게 마주앉아서 짜장면을 먹는 경우가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다. 철호는 자기가 담배를 피우지 않은 것은 확실해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들어와서 짜장면을 기다리고 있자니  왜 먼저 짜장면을 사주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이사람은 빼갈을 주문하지 않았는가. 물론 어른이니까 술을 먹기는 하겠지만 왠지 겁이 나기 시작했다. 학교 선생님이나 또는 어떤 모범이 되는 사람은 아닐 수도 있다.

철호: 낮에 술마셔도 되요?

민수:  빼갈은 술이 아니야.

철호:  그럼 뭔데요?  

민수:  육각수야.

철호:  육각수는 물이고 빼갈은 술이잖아요.

민수: 원래 술이 센사람은 술이 물인 법이야. 한잔할래?

철호:  저 술먹으면 안되는데요. 중학생이예요.

민수:  짜식 담배는 피우면서 술은 안되?

철호:  안피웠다니까요?

민수:  한잔만 먹어봐 알딸딸하고 좋아.

민수는 철호에게 잔을 건넸다. 갑자기 철호는 빼갈이 어떤맛인지 궁금해졌다. 한잔인데 뭐 어떠랴..입에 갖다대고 들이키려는 순간 민수가 잔을 뺐었다.

민수: 이봐 이봐. 너 담배도 이렇게 피운거아냐. 누가 자꾸 펴봐 펴봐 해서 피운거지? 너 딱걸렸어.

철호:  아..참 아..나..

철호는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철호:  근데 왜 짜장면을 먼저 사주세요? 만일 제가 담배 피운게 맞으면 아저씨는 손해잖아요.

민수: 다 그런게 있어  마  !

민수는 빼갈을 한잔 들이킨뒤 단무지 하나를 집어 들어 씹었다. 철호는 엽차를 마시며 그런게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곰곰해 생각하고 있었다. 짜장면과 탕수육이 문제가 아니었다. 왠지모를 오기가 생겼다. 내가 담배피운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말것이다.

잠시후 짜장면하고 탕수육이 테이블 위에 놓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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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훈은 미순엄마와 같이 콩자반을 앞에 놓고 밥을 먹었다.찜찜한 기분이 들어 밥이 목에 넘어가지가 않았다. 마치 내가 반찬 달라고 해서 반찬을 빼앗아오기라도 한 것 같지 않은가.

미순엄마: 세상에 반찬 좀 줄 수도 있지 이웃끼리 그게 그렇게 아까워? 어유..이거 이 콩자반좀 먹어봐..고소하다니까..?

태훈:  네...

딱딱한 콩자반에다가 밥 먹으려니 차라리 맨밥먹는 게 나을 것 같다.

미순엄마: 내가 스무살때 시집와서 그냥 시어머니 구박하는거 견디면서  얼마나 온갖 힘든일 하면서 한겨울 동짓달에 난방도 잘안되는 전셋집에 살면서..빨래하랴 청소하랴....남편 뒷바라지 하랴..힘들게 살아왔는지 그냥..남편은 그런거는 하나도 몰라주고 그냥...어쩌면 그렇게 지엄마하고 죽이맞아가지고..날 들들들 볶으면서..

딱딱한 콩자반도 그렇지만 미순엄마가 마치 따발총처럼 쉬지 않고 자기 인생 스토리를 들려주는 통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수가 없었다.

밥을 먹고 짐을 정리하면서 한 두시간 동안 생방송 라디오를 듣자니 귀가 먹먹해지는 것 같다.

태훈:  아니 그건 거기다 넣으시면 안되는데...책상이잖아요.

미순엄마:  아 어디다 놓을까..

태훈: 수건은 화장실에 넣고요. 옷은 옷장 설합에 넣어주세요.

미순엄마:  그래서 내가 엄동설한에 세 살난 아이 업고 남편찾으러 다섯정거장을 걸어갔더니 그 양반이 거기서 또 바둑두고 있더라니까.. 내가 기가막혀가지고.. 얼마나 눈물이 폭포같이 쏟아지는지..그자리에 앉아가지고..어휴..

어느덧 짐정리가 거의 끝나갔다. 그래도 도와줬는데 뭔가 대접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어째 더 정신만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태훈: 그럼..이제 나머지는 제가 정리하고요..그만 돌아가보세요.

미순엄마: 그래? 그럴까?

태훈:  도와주셨는데 뭐 대접해 드릴 것도 없고 식사라도 좀 하러 가실래요?

미순엄마: 아냐..이제 금방 애들 올시간 됐어. 근데..왜 여태 장가도 못가고 혼자살어? 혹시..무슨..아휴..내가 주책이라니까..호호호호. 아니..뭐 기분나쁘게 생각하지는 말고...

태훈: 뭔데요?

미순엄마: 뭐 몸에 문제가 있는건 아냐? 아니..너무 멀쩡하게 잘생겨서 그러지..왜 그런거 있을수 있지..신은 공평하다고 하잖아.  아름다운 꽃에 향기가 없을 수도 있고...잘익은 수박에 씨가 없을 수도 있고...남자도..생긴건 너무 잘생겼는데..장가를 못가면 좀 그렇긴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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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훈: 아..뭐 그러건 아니구요.

미순엄마: 그래? 어머...난 또 걱정했었지..

태훈: 왜 그런걱정을..

미순엄마: 아니 다른게 아니고 위층에 사는 철호 엄마 있잖아. 아유.. 나이는 좀 있지만 아직 곱잖아. 그치?

태훈: 그런데요.

미순엄마: 어때 생각 있어? 생각있으면 내가 다리좀 놔줄게.

태훈: 아니 아까 자기 반찬 가져갔다고 도로 가지고 가던데..

미순엄마: 아유..그거가지고 뭘 그래..원래 그냥 내숭떠는거지. 여자마음을 그렇게 모른다니까. 그러니까 여태 혼자살지. 여자는 원래 다 좋으면서 싫은척 관심없는척 하는거라니까.. 걔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라니까. 이름이 뭐라고 했지? 태성씨?

태훈:  태훈이요.

미순엄마:  그래 태훈씨 오던 날부터  그냥 얼굴이 발그레 해가지고 화색이 돌더라고.. 나한테 얼마나 꼬치꼬치 물어보는지 어떤사람이냐고.... 그러니 어쩌겠어.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은데 자꾸 물어볼 수밖에 없잖아.

관심이 없었어봐 반찬가지러 오기라도 했겠어? 그까짓 반찬이 얼마나 된다고 괜히 그러면서 얼굴한번 보려고 온거지. 어때 .. 뭐 아직 장가도 안간 총각한테 이런말 하는건 좀 그렇지만..원래 혼기 놓치면 다 그렇게 가더라고.. 뭐 누가 손해 보나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는거지. 근데 하는 일은 뭐해? 혹시 노는거 아냐?

태훈: 집에 아이들 온다더니 가보셔야 되는거 아니예요?

미순엄마: 어머..어머.. 내정신좀 봐.. 호호호호.. 가봐야지..가야지. 그리고 있잖아. 할 일 없으면 내가 부업거리 갖다줄까? 인형 눈알 붙이는 건데...그게 의외로 짭잘하다니까..아이고.. 내정신좀봐.. 가야되..가야지..

미순엄마는 문을 닫고 사라졌다. 정말 위층사는 철호엄마라는 아줌마가 나한테 관심이 있는 것일까?

항상 주변 여자들의 관심을 받아왔던 터라 철호엄마의 관심이 별로 새롭지도 달갑지도 않다. 그리고 내가 연상의 여자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철호엄마라는 여자에게 까지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실례를 범한 것 같은데 어떻게 보상을 한번 해야 하지 않을까? 뭐 내가 반찬 가져오라고 한것도 아닌데 그럴필요까지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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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는  일요일마다 가는 곳이 있다. 동네 무료 도서관이다. 철호를 데리고 오고 싶지는 않다. 매일 공부에 얼마나 시달리겠는가 일요일마저 공부를 시키고 싶지는 않다.

읽을 만한 책도 별로 없고 딱딱한 의자가 불편하기만 하지만 언제부턴가 도서관을 찾게 되는건..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라고 할까.. 영화관이나 tv에 지친 두뇌를 정화한다는 생각..

그냥 두껍고 어려운 책을 하나 꺼내들어 이해도 되지 않는 내용을 반복해 읽으면서 두시간동안 한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상념에 빠질때도 있다.

어느때는 큼직한 글씨로 가득차있는 동화책을 꺼내 읽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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